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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AI 에이전트 시대의 화폐
"증기 기관은 인간의 도구였지만 AI는 역사상 처음으로 도구가 아닌 '에이전트'가 될 수 있는 기술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이 통찰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놀랍도록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픈AI는 챗GPT 에이전트를 출시했고 앤트로픽은 에이전트 간 소통을 위한 MCP(Model Context Protocol)를 공개했습니다. 구글은 A2A(Agent-to-Agent) 프로토콜을 발표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Open Agentic Web' 비전을 선언했습니다. AI 에이전트를 이해하려면 '계산기'와 '맞춤형 전문가'의 차이를 생각하면 됩니다. 계산기에 '100 x 0.1'을 입력하면 '10'이라는 결과만 나옵니다. 다음에 뭘 계산할지는 또 입력해야 합니다. 반면 맞춤형 전문가에게는 '절세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전문가는 내 소득 원천을 분석해서 맞춤형 절세 전략을 세우고 홈택스에 신고하고 결과까지 보고합니다. 이런 변화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에게 "작년 대비 매출 증가율 차트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데이터를 찾고, 계산하고 차트를 자동으로 생성합니다. 구글의 AI는 이메일의 내용을 파악해서 적절한 답장 초안을 자동으로 작성합니다. 법률 특화 AI인 하비는 법률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넘어 문서 검토부터 사건 사실 관계 파악, 계약서 작성까지 복잡한 업무를 지원합니다. 이런 AI들이 이제는 서로 협력하며 더 복잡한 업무를 함께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면 다른 AI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또 다른 AI는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식으로 마치 하나의 팀처럼 연결되어 작업합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주문 처리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 주문접수 에이전트: 고객 주문을 받고 결제를 처리 - 재고관리 에이전트: 창고에서 상품 재고를 확인하고 출고 지시 - 배송조율 에이전트: 최적의 배송업체와 경로를 선택하여 배송 준비 - 고객소통 에이전트: 주문 확인부터 배송 완료까지 고객에게 실시간 알림 발송 - 리뷰 관리 에이전트: 배송 완료 후 고객 만족도 조사 및 리뷰 수집 고객이 "원클릭 주문"을 누르는 순간, 이 모든 에이전트들이 동시에 움직여서 상품을 배송하고 고객 만족도까지 확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은 거의 필요없어집니다. 이런 AI 협업이 한 단계 더 진화하면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I들이 단순히 함께 일하는 것을 넘어 서로 거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트라이프는 이미 AI 에이전트들이 자동으로 API를 호출하고 결제를 처리하는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한 AI 에이전트가 분석한 데이터를 다른 에이전트에게 '판매'하고 그 대가를 자동으로 받는 구조입니다. 마치 전문가들이 서로 자문을 주고받으며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이전트 이코노미(Agent Economy)'입니다. 수천, 수만 개의 AI 에이전트들은 각자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거래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 모델입니다. AI 에이전트들이 사람들처럼 서로 협업하고 거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람이 일상에서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하려면 아래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언어(소통 방법): 서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결제 수단: 실제 거래를 완료할 결제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AI 에이전트 경제에서도 정확히 같은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소통 방법: 에이전트들의 공통 언어 현재 AI 선도 기업들은 에이전트 간 소통을 위해 다음과 같은 표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MCP(Model Context Protocol): 앤트로픽이 주도하는 이 프로토콜은 AI 에이전트가 외부 데이터와 도구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마치 C형 USB로 알려진 'USB-C' 처럼 AI 에이전트가 다양한 데이터 소스(구글드라이브, 슬랙 등)에 표준화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줍니다. A2A(Agent2Agent): 구글이 주도하고 5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이 프로토콜은 서로 다른 프레임워크의 AI 에이전트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작업을 조율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입니다. 또 다른 핵심 문제는 결제입니다. AI 에이전트에게 신용카드를 발급이나 은행 계좌를 개설해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은 철저히 인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인터넷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1992년, HTTP 프로토콜 개발자들은 디지털 현금 및 마이크로 결제를 위해 '402 Payment Required'라는 상태 코드를 만들어뒀습니다. 하지만 이 코드는 30년 넘게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온라인 결제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 시스템은 오프라인 거래를 위해 만들어졌고 온라인에서는 복잡한 중개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웹은 결제 대신 광고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대신 광고를 봐야 하는 것이 웹 기반 사업모델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는 광고를 클릭하지 않습니다. 에이전트가 웹을 탐색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완전히 새로운 수익 모델이 필요합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는 각각 '에이전트 페이(Agent Pay)'와 '지능 상거래(Intelligent Commerce)'라는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발표했습니다. 세부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서 안전하게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트라이프와 코인베이스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스트라이프는 11억달러에 인수한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인 브릿지와 프라이비를 기반으로 스테이블코인 금융 계좌(Stablecoin Financial Accounts) 서비스를 101개국에 출시했습니다. 코인베이스는 x402 프로토콜을 발표하며 "인터넷의 원죄를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결국 마스터카드, 비자, 스트라이프, 코인베이스가 구현하려는 기능들은 동일합니다: 프로그래머블 — 에이전트가 코드로 직접 제어 가능. 스마트 컨트랙트 실행 가능 무허가 — 계정 개설이나 승인 절차 없이 즉시 사용 가능 글로벌 —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국경 제약 없이 사용 즉시 정산 — 몇 초 내 전 세계 어디든 송금 완료 투명함 —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에 실시간 기록 비용 효율성 — 중개 기관 없이 직접 거래로 수수료 최소화 30년 전 HTTP 402 코드를 만들었던 개발자들이 꿈꿨던 '인터넷 네이티브 결제'가 드디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해답이 신용카드가 아니라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결국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해답은 스테이블코인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마치 인터넷이 정보의 흐름을 바꾼 것처럼 AI와 스테이블코인의 결합으로 인터넷의 금융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됩니다. 이혜성 아크포인트 COO
